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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탄생(5)

작성일
2008-08-07 00:00
작성자
최*수
조회수
1573
첨부파일
과학의 탄생(5)
사이비 과학의 역사적 고찰 ― 몽테뉴의 수상록을 중심으로
지금 창조과학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과거 40년간 그 세력을 꾸준히 키워왔다. 현직에도 상당수가 본업과 함께 창조업을 겸하고 있는 자가 많지만 퇴직자 중에는 더 많다. 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는 창조과학이 새로운 과학연구분야라고 인정하면서 방관 방조하고 전문연구위원의 경력에는 창조과학 종사 관련 부분이 자랑스럽게도 들어가 있고, 나 같이 창조과학을 부정하는 자는 골수 기독교 신자라서 남을 사이비로 모는 버릇이 있다고 매도된다. 그런데 지금도 별수 없지만 중세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과학과 사이비가 혼재하면서 사이비가 더 설쳤다.
몽테뉴(1533~1592)의 수상록은 총 1400여 페이지(손우성 역, 동서문화사 간행)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갖고 있다. 광부 출신의 어떤 서양 문학가의 젊은 시절 일화와 같이 폭설 때문에 산속에 갇혀서 봄이 올 때까지 읽기에는 참 알맞은 책이다. 그리하여 그는 광부들과 “인생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결혼에 대하여 수상록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나?“하는 질문을 받고 대답함으로서 인기를 끌었고, 그 자신도 문학적 소양을 쌓았다고 한다.
몽테뉴의 아버지는, 우민화(소위 평준화) 정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국민감정 하에서는 스페어 목이 열개가 있어도 성치 못할 과외교육을 아들에게 시켰다. 수상록의 해제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또한 그의 부친은 그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당시 지식인에게 필수적인 라틴어 습득의 곤란을 극복시키기 위해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일인 학자를 가정교사로 초빙, 라틴어를 가르치게 하였다. 몽테뉴 앞에서는 그 부모를 위시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 성밖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라틴어만을 쓰게 하였기 때문에 서투르나마 온 동네에 라틴어 사용의 유행이 일 정도였고, 몽테뉴는 이미 여섯 살에 학자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정확한 라틴어를 유창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몽테뉴는 과외교육의 산물이었고, 또한 그것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가 과외교육의 중압에 찌그러지지 않고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나 하면 그는 자신의 주관을 가질 정도의 머리는 되지 못하였으며, 수상록의 내용이라는 것이 남의 글을 인용하고 인용하다 못해 “내가 열세 살이었을 때”하고 베르길리우스(몽테뉴가 수상록에서 가장 빈번히 인용한 로마의 시인)를 인용할 때는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책을 집어 던지고 싶어질 정도다. 그래도 몽테뉴의 수상록은 “인간에 관한 지식의 보고”이기 때문에 읽어야한다. 더구나 폭설로 산속에라도 갇히면 어쩔 수 없다. 몽테뉴 수상록을 통독한 전문위원이 계시면 역시 술 한 잔 거하게 살 용의가 있다.
몽테뉴가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적었을 것이고, 그것을 읽은 나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있다. 그러나 몽테뉴는 이 사건뿐만 아니라 어느 것에도 자기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 그 당시 독실한 신앙을 가진 한 권력자가 신생아를 격리시켜 말을 가르치지 않고 먹을 것만 준다면, 아마 그 아이가 처음하는 말은 라틴어로 빵이라는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애꿎은 아이 하나만 버렸다.
중세암흑시대에 종교가 학문, 예술, 경제, 일상생활 및 정치를 지배하였을 때 당연히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고 人性도 마땅히 천부적인 것으로서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종교행사에 사용되어 신과 통하는 언어인 라틴어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의 입에서 자연히 나올 것이니, 아이를 굶기기만 하면 라틴어로 “빵”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터져 나올 것이라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에서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오늘 여기서 창조과학이 하는 짓하고 똑 같으냐? 이거 생사람 잡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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