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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탄생(3)

작성일
2008-08-07 00:00
작성자
최*수
조회수
1583
첨부파일
과학에 의한 천하통일
그리스의 철학자, 과학자이며 교육자인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마케도니아의 왕을 모시는 의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왕자 알렉산더 또는 젊은 알렉산더 대왕(BC356~323)의 선생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왕자의 스승이었다는 쪽에 호감이 간다. 그래야만 다음 문장을 계속 쓸 맛이 난다. 사람은 일단 머리가 굳으면 가르치기 어려워진다.
그 사부는 어린 왕자를 이렇게 가르쳤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왕자님 보십시오. 무거운 쇠는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깃털은 천천히 떨어집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깃털은 떨어지기는커녕 날아가 버립니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그 후 갈릴레이가 나타날 때까지 거의 1500년간 진리로 통용되었고 실제 현상에 완전히 합치하였다. 포격전이 없었으니 갈릴레이나 뉴턴의 물리학은 필요 없었던 시대다. 다시 말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오늘날의 상대성이론 정도로 완벽한 과학이었다.”―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고 말한 물리학 교사 생각이 나서 敷衍했다.
요는 그 과학자가 인류 역사의 흐름을 가닥 잡는 기로에 서서 정복자에게 과학적 사고방식에 의하여 정확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평생에 단 한번도 전쟁에서 패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가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단정한다. 그는 미신 행위에 자신의 능력을 낭비하지 않은 당시의 유일한 군주였고, 출정 전에 신탁을 받아 자신의 운명을 신에게 맡겼다는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은 지금도 통신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삶아놓은 돼지머리에 머리를 조아려 세계적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만, 2천년 전에야 출정 전에 신의 뜻을 알아보는 것은 필수다. 맹신과 비과학적 사고방식에 의한 낭비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와 개인을 망치고 있다.
진시황(BC259~210)은 알렉산더의 천하통일보다 100년 뒤처져 중국천하를 통일하였다. 중국이 이제야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으니 지금은 200년 뒤떨어졌다. 그가 폭군이라서 폭압으로 천하를 통일했다고? 유방과 유림이 모략을 해도 너무 했다. 그는 우선 재질과 수량에 있어서 소양댐에 버금가는 저수지를 만들어 수자원을 확보하고 식량 문제를 해결하였다.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중앙집권제)를 채택하여 관리를 임명하고 봉급을 지급하였다. 봉건제하에서 관리가 백성을 수탈하여 제 배만 불리고 세정을 어지럽게 할 여지를 없앤 것이다. (2100년 뒤 대한제국은 이걸 못해서 망했다) 전사자 유가족의 생활을 보장하였다. 진나라 백성이 맨입으로 국가에 충성하지는 안았다. 그의 과학적 업적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타난다. 鐵官이라는 관리를 두고, 제철산업을 일으켰다. 독자들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중국은 청동기 시대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철제 무기는 오늘날 원자탄의 위력과 맞먹었다. 철제 공구로 지은 아방궁 이전의 청동제 공구로 지은 건축물은 오두막에 불과했다. 아방궁이 크고 호화로운게 아니고 그전의 건축물이 너무 허름했다. 진시황은 금속공학 발전사에 명예로운 이름이 올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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