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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기2

작성일
2011-01-31 00:00
작성자
길*철
조회수
2316
첨부파일
오후6시경 정토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수자타 아카데미로 출발 밤11시에 도착하다. 수자타 아카데미는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신 전정각산 아래 마을의 천민들을 위하여 설립한 학교로서 유치원 소학교 중학교 포함 근2,000여명을 가르치고 있다.

1/12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예불을 마치고 5시 부다가야로 걸어서 출발하였다. 이 길은 부처님께서 6년 간 고행을 하였으나 의미없음을 깨달으시고 수자타 마을로 내려와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받으시고 기력을 회복하여 부다가야로 성도의 길을 가신 길이다. 10키로 남짓한데 니이란쟈 강을 건너가는 길이다. 강 주변에는 쿠샤라는 갈대풀이 자라고 있다. 쿠샤는 경전에 길상초로 번역되어 있다. 가는 길의 논두렁에는 박하가 무리를 이루어 자라고 있다. 가는 길에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 4시간 걸려 9시경에 부다가야 대탑에 도착하였다. 원래 이 대탑은 아쇼카왕이 세웠던 것인데 인도에 불교가 사라지면서 힌두교가 관리를 하여 왔었다. 그러나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성도를 기리어 세운 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얀마의 왕이 거금을 들여 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사들인 곳이다. 지금도 대탑의 관리는 불교인4명, 힌두교인4명, 정부관리1명으로 되어있으나 정부관리가 힌두임으로 불교가 완전한 관리를 하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 일행도 가사를 입었으므로 스님들이 출입하는 중앙통로를 통하여 대탑 안으로 들어가 예불을 드렸다. 예불을 마치고 자유시간에 탑 밖의 네팔 노천식당에 들어가 칼국수격인 툭파, 쇠고기 만두 비슷한 모모를 먹었는데 맛이 괜챦다.

1/13일 전정각산을 둘러싸고 있는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다. 대부분이 천민으로서 전기가 없이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고, 난방도 없이 담요하나만으로 흙바닥에 잔다. 그러니 기온이 7도 이하로 내려가면 동사자가 속출한다. 야생의 동물과 다름없는 생활이다. 찬 바닥에서 생활하고 잠을 자니 근골격계 질환이 많다. 저녁 마을방문 소감발표시간에 젊은 세대들은 이들의 어려운 생활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우리의 풍요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한다. 우리도 과거 50년대, 60년대에는 저렇게 살았다.

1/14일 5시 법화경을 설하신 왕사성(지금의 라즈길)으로 향하다. 영축산이 있는 곳으로서 영축산에서는 법화경, 산 아래 밤비사라왕의 감옥터에서는 정토3부경의 관무량수경이 설해진 곳이다. 또한 영축산은 우리 궁중음악인 영산회상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7시경 도착하여 영축산을 오르는데 산세는 해발300m도 안 되는 밋밋한 산으로 우리의 관악산에도 훨씬 못 미치나, 산이 귀한 북인도에서는 반경 수백킬로 이내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양산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도 이름은 여기에서 따 왔다. 산 정상에는 법화경을 설하신 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산 올라가는 중간에는 사리불이 수도하던 굴도 있다. 경주의 불국사는 석가탑, 다보탑을 만들어서 법화세상을 만든 것인데, 여기의 맞은 편 정상에도 일본사람들이 세운 다보탑이 주위와 잘 어울리지 않게 서 있다. 다보탑이 있는 정상은 지금은 인도인들이 케이불카로 오르내리는 유락장소가 되어버렸다. 법화경을 송독하고 아래의 밤비사라왕의 감옥터에서 관무량수경을 송독한 후에 제1차결집이 행해진 칠엽굴에 올랐다. 칠엽굴은 부처님 열반 후 가섭존자와 아난, 장로 500인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경전을 만든 곳이다. 칠엽굴이 있는 산은 자이나교의 성지가 되어서 순례객들이 많이 오르내린다. 가섭존자 사리불 목련존자도 죽림정사에서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오후에 불교최초의 절이 되는 죽림정사를 보고 죽림에서 대잎을 따서 기념으로 간직하였다. 다시 나가서 후세에 최대의 대학이 되는 나란다대학터(길이 7마일, 폭 3마일)를 보았다. 이날 저녁 숙소는 미얀마절에 정하였다.

1/15일 5시 바이샬리로 향하다. 바이샬리는 대승불교의 경전인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거사가 살던 곳이며, 부처님 당시에도 공화제로 운영되던 나라였다. 공화국제도의 기원이 되는 곳이어서 지금도 인도 국회가 개원할 때면 이 곳 카라우나 포칼 연못에서 물을 떠가서 성수로 사용하여 의식을 치른다한다. 부처님 당시에도 자유주위 정신이 강한 곳이었다. 바이샬리에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있다. 부처님 열반 후에 사리를 여덟 곳에 나누어 봉안하였는데 후대에 아쇼카왕이 사리탑을 헐고 사리를 인도 및 주변국가에 보냈었다. 사리탑을 참배하고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한 원후봉밀터를 들러서 스리랑카절에 숙소를 정하였다.
사진1 수자타학교의 점심시간, 뒤에 보이는 산이 부처님이 6년 간 고행을 하시다가 고행을 버리고 내려온 전정각산이다.
사진2 죽림정사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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